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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 또는 스데반의 마지막 말처럼 끝까지 믿음 만약 누가 절 죽인다면 저는 그사람의 영혼을 찢어죽여달라고 할꺼같은데 스데반은
만약 누가 절 죽인다면 저는 그사람의 영혼을 찢어죽여달라고 할꺼같은데 스데반은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말라고 하는데 그런 마음은 어떡해 얻죠? 전 신앙 생활30년해도 저한테 해를끼친사람 벌받아야한도 생각하는데 잘못된건가요?
질문자님, 안녕하세요?
스데반의 기도는 인간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저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죄가 용서되기를 구합니다. 이 놀라운 장면의 바로 앞 구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고…”(행 7:55).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스데반의 용서와 기도는 애써 억누른 의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를 완전히 주장하실 때 나타난 은혜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자님의 분노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합니다(엡 4:26).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런 감정까지도 하나님 앞에 솔직히 내어놓기를 원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 전 저 사람을 도무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기도가 더 깊은 신앙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 그 감정 위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여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자라나는 열매입니다. 스데반처럼 되기 위해 억지로 감정을 억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저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하고, 그 길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자리입니다. 지금은 비록 “그 사람은 벌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드신다 해도, 그 분노를 억누르지 마시고, 매일 하나님께 정직하게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 저는 아직도 미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 안에 스데반의 마음이 자라나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완성형이 아니라 여정입니다. 성령께 나의 마음을 반복해서 맡기고, 기도와 말씀 안에 거할 때, 스데반의 믿음도 결국 우리 안에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나는 아직도 분노가 있다”는 자각이, 오히려 내일의 은혜를 위한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용서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제 답변이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더 궁금하신 점은 추가 Q&A에 남겨 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